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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의 복을 사고 판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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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크립션
가난하지만 지혜로운 노인은 우연히 도깨비를 만나 ‘복을 사고파는 사업’을 제안받는다. 처음에는 장난 같던 거래가 점차 성공을 거두며 노인은 부를 쌓아간다. 하지만 도깨비와의 동업이 오래갈 리 없었다. 복이 줄어들자 도깨비는 불만을 품고, 노인은 욕망과 지혜 사이에서 마지막 선택을 해야만 한다. 과연 그는 도깨비의 분노를 피할 수 있을까, 아니면 복을 판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인가?
후킹멘트
"복을 얻고 싶다면, 그 대가를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가난한 노인은 도깨비와 동업을 시작하며 복을 사고팔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앞다투어 금화를 받고 삶을 바꿔갔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복이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손쉽게 얻은 복은 과연 축복일까, 아니면 저주일까?
도깨비와 노인의 기묘한 거래, 그리고 그 끝에 남겨진 진실.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시작한다.
1 도깨비와의 기묘한 인연
조선의 깊은 산골 마을에 한 노인이 살고 있었다. 세월에 찌든 얼굴과 마른 몸, 낡은 옷가지 몇 벌이 전부였지만, 그는 언제나 성실하게 하루를 살아갔다. 가진 것은 없었지만 욕심을 부리지 않았고, 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날도 노인은 먼 장터에서 필요한 물건을 사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마을로 가려면 빙 둘러 가야 했지만, 그는 지름길을 택했다. 사람들은 그 길을 피했지만, 노인은 그러거나 말거나 개의치 않았다. 산길은 그에게 익숙한 곳이었고, 겁낼 일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길을 따라 걷다가, 문득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숲속 어딘가에서 웅성거리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희미한 불빛이 흔들렸다. 노인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살폈다. 저녁이면 도깨비 불이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직접 본 적은 없었다.
호기심이 동한 노인은 조심스럽게 나무 사이로 다가갔다. 그리고 숲속 한가운데에 서 있는 기이한 존재를 보았다. 커다란 덩치, 짙은 눈썹, 짐승처럼 복슬복슬한 팔과 다리. 무엇보다도 이마 한가운데에서 불쑥 솟아난 뿔이 그의 정체를 말해주고 있었다. 도깨비였다.
그 도깨비는 허리춤에 작은 주머니를 달고 있었는데, 그 안에서 반짝이는 금화가 툭툭 튀어나오고 있었다. 금화는 공중을 빙글빙글 돌다가 바닥에 떨어졌다. 그런데 도깨비는 그것을 주워 들며 마치 짐이라도 되는 것처럼 깊은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이놈의 복! 아무리 써도 돌아오기만 하고, 쌓아둬도 더 늘어나지 않으니 원…"
도깨비가 투덜거리며 다시 한숨을 쉬자, 금화가 주머니 속으로 다시 쏙 빨려 들어갔다.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던 노인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도깨비님, 뭔가 고민이 있으신가 보군요?"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도깨비가 깜짝 놀라 노인을 쳐다보았다. 순간 그의 눈썹이 꿈틀거리더니 이내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변했다.
"흥, 인간이 감히 나에게 말을 거는군. 두렵지도 않느냐?"
노인은 허리를 살짝 숙이며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
"겁낼 이유가 있겠습니까? 저는 그저 지나가던 노인일 뿐입니다. 하지만 방금 들은 이야기가 흥미로워서 말이지요. 도깨비님께서 쓰지도 못하는 복이라 하셨는데, 그게 대체 무슨 뜻입니까?"
도깨비는 팔짱을 끼고 노인을 훑어보았다.
"그래, 듣고 싶다면 알려주지. 원래 내 복은 한 번 쓰면 두 배로 늘어나야 하는데, 이젠 그렇지가 않아. 아무리 써도 그대로 돌아오고, 쌓아둬도 늘어나지 않는다. 그러니 쓸 수도, 팔 수도 없단 말이다!"
노인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렇다면…" 노인이 입을 열었다. "도깨비님, 제가 그 복을 대신 써드리면 어떻겠습니까?"
도깨비는 눈을 가늘게 뜨고 노인을 바라보았다.
"네가 내 복을 대신 쓴다고?"
"예, 도깨비님께서는 아무리 써도 돌아온다 하셨지요? 그렇다면 저에게 주시면 제가 인간 세상에서 그 복을 써 보고, 대가를 지불한 뒤 다시 돌려드릴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도깨비는 턱을 쓰다듬으며 곰곰이 생각했다. 한 번도 그런 거래를 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답답하게 쌓아두고만 사는 것보다는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흠… 재미있는 제안이군. 그래, 어디 네놈이 감당할 수 있는지 한 번 보도록 하지."
그렇게 도깨비와 노인의 기묘한 동업이 시작되었다.
2 복을 사고파는 새로운 사업
도깨비와의 거래가 성사된 뒤, 노인은 그와 함께 숲속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나무들이 빽빽이 서 있는 가운데, 작은 공터가 나타났다. 그곳에는 사람들이 전혀 찾지 않는 듯한 낡은 정자가 있었다. 도깨비는 그곳을 제 집처럼 드나들며 지내고 있었다.
“자, 이제부터 네가 내 복을 써보겠다는 것인가?”
도깨비는 팔짱을 끼고 노인을 내려다보았다. 그 눈빛에는 의심과 흥미가 섞여 있었다.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예, 하지만 그냥 쓰는 것이 아니라, 복을 사고파는 일로 만들어 보면 어떻겠습니까?”
도깨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복을 사고판다고?”
노인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도깨비님께서 아무리 복을 써도 돌아온다면, 그것을 제가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값을 받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하면 도깨비님은 지루하지 않을 것이고, 저 또한 그 덕을 보게 될 것입니다.”
도깨비는 노인의 말을 곰곰이 되새겼다. 처음엔 말도 안 되는 소리라 생각했지만, 가만히 듣고 보니 흥미로운 제안이었다.
“그럴듯하군. 하지만 인간들이 그렇게 쉽게 복을 사려 할까?”
노인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복을 원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무리 부자인 자라도 더 많은 복을 바라고, 가난한 자는 한 조각의 행운이라도 간절히 원할 것입니다.”
도깨비는 손에 들고 있던 작은 주머니를 흔들었다. 그러자 주머니 안에서 금화와 보석이 쏟아지듯 튀어나왔다.
“좋다. 그럼 한 번 시험해보도록 하지. 먼저 네가 이 복을 써보거라.”
노인은 도깨비가 내민 금화를 손에 쥐고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단순한 금화가 아니라, 마치 빛을 머금은 듯 신비로운 기운이 감돌았다. 노인은 조심스럽게 그것을 품에 넣었다.
그날 밤, 노인은 산속 오두막에서 잠이 들었다. 그리고 아침이 되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낡고 허름했던 오두막이 한순간에 말끔한 기와집으로 변해 있었던 것이다. 장독대에는 곡식이 가득 쌓였고, 부엌에는 따끈한 밥과 국이 놓여 있었다.
노인은 손으로 기둥을 두드려 보았다. 분명 꿈이 아니었다.
“이게… 복의 힘이란 말인가?”
그는 문을 열고 마당을 내다보았다. 오랜 세월 동안 허름한 초가집에서 지내왔는데, 단 하루 만에 이렇게 변해버렸다. 신기하고도 두려운 일이었다.
그때, 도깨비가 느닷없이 나타나며 큭큭 웃었다.
“네놈도 이제야 실감이 나는가?”
노인은 잠시 망설였다. 도깨비의 복이 이렇게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면, 이를 이용해 사람들에게 복을 팔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불길한 예감도 들었다. 복을 이렇게 쉽게 얻는 것이 과연 좋은 일일까?
그러나 이미 시작된 일이었다. 그는 결정을 내렸다.
다음 날, 노인은 마을로 내려갔다. 그리고 시장 한편에 자리를 잡고 조심스럽게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사람들이여, 복을 사고 싶은가?”
처음에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노인이 품에서 빛나는 금화를 꺼내 보이자, 사람들의 눈빛이 변하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돈인가요?”
한 남자가 다가와 물었다.
노인은 빙긋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이것은 단순한 금화가 아닙니다. 이 금화를 가진 자는 복이 깃들 것이고, 원하는 일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사람들은 수군거리며 서로의 얼굴을 살폈다. 누군가는 미심쩍어했지만, 또 누군가는 노인의 말을 곰곰이 되새기는 듯했다.
그때, 한 가난한 청년이 앞으로 나섰다.
“저도 복을 얻을 수 있습니까?”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하지만 복을 얻기 위해선 대가가 필요하네.”
청년은 주머니를 뒤져 작은 은화 한 닢을 꺼냈다. 노인은 그것을 받아들고, 도깨비가 준 금화를 건네주었다.
“이 금화를 품고 잠들어 보게. 내일 아침이면 달라진 것을 알게 될 걸세.”
청년은 의심스러운 듯 금화를 받아들고 떠났다. 그리고 다음 날, 마을에서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가난했던 청년이 한순간에 벼락부자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이제, 마을 사람들의 관심이 노인의 손에 쥐어진 복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3 부를 쌓아가는 노인과 도깨비
노인의 복 장사는 순식간에 마을을 넘어 주변 고을까지 소문이 퍼졌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던 사람들도, 복을 얻고 삶이 변한 이들을 보며 앞다투어 그를 찾아왔다.
장터 한편, 노인은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그의 앞에는 도깨비가 준 금화가 놓여 있었고, 사람들은 차례로 줄을 서서 그 금화를 얻고자 했다.
“저도 복을 받고 싶습니다.”
한 중년 남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병든 아내와 자식들을 부양하느라 빚에 허덕이고 있었다. 노인은 남자의 절박한 눈빛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말했다.
“대가는 지불할 수 있겠소?”
남자는 지갑에서 은화 몇 닢을 꺼내 노인 앞에 내밀었다.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반짝이는 금화를 그의 손에 쥐여 주었다.
“이 금화를 품고 잠들게. 내일이면 새로운 운명이 열릴 것이오.”
남자는 금화를 품에 안고 연신 감사의 인사를 했다. 마을 사람들은 웅성거리며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정말 저 금화를 가지면 복을 받을 수 있단 말인가?”
“지난번 청년도 하루아침에 부자가 되었다지 않소?”
“믿기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확실히 변한 사람이 많으니….”
그렇게 한 사람, 두 사람씩 노인의 복 장사에 돈을 내고 금화를 받아갔다. 어떤 이는 작은 은화를 내고, 어떤 이는 집을 팔아 많은 복을 얻으려 했다. 그리고 기이한 일이었다. 복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삶이 달라졌다.
병들어 누워 있던 이가 건강을 되찾고, 가난했던 사람이 한순간에 부유해졌다. 땅을 사면 금이 나오고, 장사꾼들은 하루아침에 장터의 큰 주인이 되었다.
이 모든 것을 지켜보던 도깨비는 흥미롭다는 듯 노인을 바라보았다.
“인간들이란 참으로 재미있는 종족이군. 조금만 욕심을 부려도 서로 앞다투어 돈을 바치는구나.”
노인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복이란 원래 간절한 자에게 더 크게 다가오는 법이오.”
그러나 도깨비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네놈이 인간 세상을 잘 모르는군. 복을 쉽게 얻은 자들이 과연 그것을 소중히 여길까?”
노인은 대답하지 못했다. 사실 그는 자신이 팔아넘긴 복이 앞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손에는 이미 많은 재물이 쌓여가고 있었다. 처음엔 도깨비가 준 금화만으로 시작했지만, 이젠 온갖 값진 보물이 쌓여 있었다. 돈이며 비단, 귀한 물건들이 쏟아졌고, 그는 이제 더 이상 가난한 노인이 아니었다.
어느덧, 허름한 오두막을 떠나 번듯한 기와집으로 옮겼다. 사람들은 그를 ‘복을 부르는 노인’이라 불렀고, 그의 집 앞에는 날마다 행운을 얻고자 찾아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러나 도깨비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복을 사고파는 것은 인간의 욕심을 자극하는 일. 그 끝이 과연 좋을까?”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노인은 아직 알지 못했다.
4 복을 판 대가, 그 뒤에 숨은 진실
노인의 복 장사는 날이 갈수록 번창했다. 마을 사람들은 물론, 다른 고을에서도 그의 명성을 듣고 찾아왔다. 그들은 노인에게 돈을 내고 금화를 받아갔으며, 노인은 그 대가로 점점 더 많은 재산을 쌓아갔다.
하지만 그럴수록 도깨비는 점점 말수가 줄어들었다. 처음엔 흥미롭게 지켜보던 도깨비도 이제는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어느 날 밤, 도깨비가 노인을 불러 앉혔다.
“노인아, 네가 판 복이 정말 인간들에게 좋은 일만 가져다줄 것이라 생각하느냐?”
노인은 잠시 당황했지만, 태연한 척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이지. 복을 받은 사람들은 모두 부자가 되었고, 병든 자들은 건강을 되찾았소.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소?”
그러나 도깨비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면, 네가 팔아넘긴 복을 받은 자들이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확인해볼 생각은 해보았느냐?”
노인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는 복을 파는 일에만 집중하느라, 복을 받은 사람들이 그 후에 어떻게 되었는지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도깨비는 노인의 팔을 붙잡고 그를 데리고 산을 내려갔다. 그리고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며 복을 받은 자들의 삶을 직접 보여주었다.
첫 번째로 찾아간 곳은 몇 달 전만 해도 가난했던 한 장사꾼의 집이었다. 그는 노인에게서 금화를 받고 하루아침에 부자가 되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집은 황폐해져 있었고, 술에 취한 채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이보시오, 무슨 일이 있었소?”
노인이 묻자, 장사꾼의 아내가 흐느끼며 대답했다.
“처음에는 좋았어요. 장사가 잘되고 돈이 들어오니 남편은 기뻐했죠. 하지만 돈이 많아지자 점점 더 큰 욕심을 부렸어요. 한 번 행운을 얻으니 멈출 수가 없다고 하더군요. 결국 도박에 빠지고, 사람들을 속여 돈을 벌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결국 모든 걸 잃고 말았습니다.”
노인은 충격을 받은 듯 멍하니 서 있었다.
도깨비는 그런 그를 데리고 또 다른 집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한 부유한 가문의 집이었다. 원래도 넉넉한 살림을 꾸리던 집안이었지만, 복을 받은 뒤 더 많은 재산을 모았다. 하지만 그 대가로 가족들은 서로 반목하며 싸우고 있었다.
“아버지께서 주신 복으로 우리가 이만큼 잘살게 된 건데, 왜 제 몫을 줄이시는 겁니까?”
“너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복만 받았지 않느냐! 내가 벌어들인 재산이다!”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를 원망하며 소리치고 있었고, 다른 가족들도 분노와 욕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노인은 그 모습을 보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분명 처음에는 모두가 행복해질 거라 믿었는데, 현실은 그와는 전혀 달랐다.
도깨비는 마지막으로 한 청년의 집으로 노인을 데려갔다. 이 청년은 복을 받고 가난에서 벗어났지만, 그 대가로 너무나도 소중한 것을 잃었다.
“내가 이 돈을 얻은 순간, 친구들은 모두 나를 떠났어요. 돈이 있을 땐 다들 나를 따르더니, 돈이 없어지자 다들 등을 돌렸습니다. 어쩌면 이 복이 내 인생을 망쳐버린 걸지도 몰라요.”
청년의 눈에는 허망함만이 남아 있었다.
노인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도깨비가 말한 것처럼, 복을 받은 사람들은 단순히 행복해지지 않았다. 복을 얻는 순간, 사람들은 욕심에 눈이 멀었고, 그 복을 지키기 위해 서로 싸우고 다투었다.
도깨비는 조용히 말했다.
“복이란, 원래 흘러가는 법이지. 억지로 쥐고 있으면 언젠가는 썩게 된다.”
노인은 그제야 깨달았다. 자신이 판 복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욕망을 키우고 화를 불러일으킨 것이었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도깨비에게 물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오?”
도깨비는 노인의 어깨를 두드리며 조용히 웃었다.
“이제부터 네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달렸지.”
노인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이제 그는 복을 계속 팔아야 할지, 아니면 이 모든 것을 멈춰야 할지 선택해야만 했다.
5 운명을 뒤흔든 선택의 끝
노인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도깨비와 함께 마을을 돌며 본 광경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처음엔 복을 나누어 주는 것이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사람들은 복을 쉽게 얻으면서 더욱 욕심을 부렸고, 그 복을 지키기 위해 서로 싸우고, 결국 스스로를 파멸로 몰아넣었다.
"복이란 원래 흘러가는 법이지. 억지로 쥐고 있으면 언젠가는 썩게 된다."
도깨비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그렇다면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계속해서 복을 팔아 사람들의 욕망을 채워줄 것인가, 아니면 이 모든 것을 멈출 것인가?
그는 오래 고민한 끝에 답을 내렸다.
이튿날, 노인은 자신의 집 마당에 큰 불을 피웠다. 사람들이 궁금해하며 몰려들었다.
"노인장, 이게 무슨 일입니까?"
"무슨 물건을 태우시는 겁니까?"
노인은 말없이 자신의 창고에서 보관하던 금화와 보석들을 하나둘 불 속에 던졌다.
그동안 팔지 않고 남겨둔 복의 흔적이었다. 금화는 불길 속에서 사라졌고, 사람들은 경악했다.
"이게 무슨 짓이오! 왜 귀한 재물을 태우는 겁니까?"
사람들의 원성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노인은 그들을 향해 조용히 말했다.
"이 복은 진정한 복이 아닙니다. 손쉽게 얻은 복은 곧 화가 되어 돌아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더 나누어 주시오! 우리가 잘 간직하겠습니다!"
노인은 고개를 저었다.
"이미 많은 이들이 이 복을 받고도 불행해졌소. 욕심을 버리지 않는 한, 이 복은 결국 저주가 될 뿐이오."
마을 사람들은 당황했다. 하지만 노인의 말이 사실임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쉽게 반박하지 못했다.
그동안 복을 받고도 행복을 찾지 못한 이들이 차츰 고개를 숙였다.
도깨비는 멀리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결국 네가 제대로 된 길을 택했구나."
노인이 조용히 웃었다.
"처음엔 이 복이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 거라 믿었소. 하지만 그게 아니었지. 복이란 저절로 흘러가야 하는 법이오."
도깨비는 고개를 끄덕이며 노인의 손에 마지막 금화를 쥐여 주었다.
"이것이 마지막 복이다. 이건 네가 어떻게 쓰든 상관없다. 이제 네 몫의 복이니, 진정으로 원하는 곳에 쓰도록 해라."
노인은 그 금화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그것을 불길 속에 던졌다.
그날 이후, 노인은 다시 평범한 삶으로 돌아갔다. 이제는 부자가 아니었고, 복을 사고파는 장사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도 서서히 깨닫기 시작했다. 진정한 복이란 돈이나 권력이 아니라, 스스로의 삶을 만족스럽게 살아가는 데 있다는 것을.
도깨비는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어느 날 조용히 사라졌다.
그리고 사람들은 두 번 다시 도깨비를 본 적이 없었다.
노인은 여전히 산골에서 조용히 살았다. 그는 더 이상 부자가 아니었지만, 그의 얼굴에는 예전보다 훨씬 평온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복이란 애초에 사고파는 것이 아니었는지도 모르지."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따뜻한 햇살 아래에서 눈을 감았다.
6 도깨비와 노인의 갈등
노인이 복을 태워버린 이후, 마을은 잠잠해졌다. 복을 손에 쥐고도 불행해진 사람들은 노인의 말이 옳았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를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어느 날 밤, 노인의 집 앞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의 눈빛은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노인장! 왜 우리에게 남은 복을 나누어 주지 않았소?"
"우리에게는 선택할 기회조차 없었소! 그 복을 태워버릴 거라면, 차라리 우리에게 나누어 주었어야 했소!"
노인은 담담하게 그들을 바라보았다.
"손쉽게 얻은 복은 오히려 화를 부를 뿐입니다. 그것이 결국 불행을 가져온다는 것을 여러분도 보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사람들은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그래도 그것은 우리 것이 될 수도 있었소! 부자가 되지 못한 사람들은 여전히 가난에 허덕이고 있단 말이오!"
그들의 눈빛은 절박했다. 일부는 이미 복을 받고도 불행해졌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은 복을 얻지 못했기에 마지막 기회를 놓쳤다는 아쉬움과 분노를 품고 있었다.
그때였다. 갑작스럽게 불길이 일렁이며 도깨비가 나타났다.
"흥, 인간들이란 참 우습군. 아직도 복을 탐하고 있느냐?"
도깨비의 목소리는 깊고 울림이 있었다. 사람들은 두려운 듯 움츠러들었지만, 여전히 노인을 향한 불만을 거두지는 않았다.
도깨비는 천천히 노인을 바라보았다.
"노인아, 네가 복을 팔아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들더니, 이제는 태워버리고 모두를 원망하게 만들었군. 어쩌면 네 선택이 또 다른 불행을 불러온 것은 아닐까?"
노인은 도깨비의 말에 잠시 침묵했다.
"나는 더 이상 복을 사고팔지 않겠다고 결심했소. 사람들에게도 복을 쥐어주는 것이 결코 행복을 가져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소."
도깨비는 팔짱을 끼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네 뜻은 알겠다. 하지만 인간들이 이렇게 쉽게 포기할 것 같으냐? 그들에게 복을 거부당했다는 사실은 너를 원망하게 만들 것이다. 결국 네가 저들을 불행하게 만든 것이나 다름없지 않느냐?"
노인은 눈을 감고 깊이 생각했다. 도깨비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그는 복을 나누는 것이 화를 부를 것이라 생각했지만, 복을 태운 것이 또 다른 불행을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때, 마을 사람들 중 한 명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노인장, 우리가 잘못 생각했던 것 같소. 복이란 남에게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일지도 모르겠소."
그의 말에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 쉽게 무언가를 얻으려 했소. 하지만 우리가 직접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 복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소."
노인은 그 말을 듣고 미소를 지었다.
도깨비는 흥미롭다는 듯 눈을 가늘게 뜨고 노인을 바라보았다.
"네가 만든 복 장사는 결국 이렇게 끝나는군. 그래, 나도 이제 너와의 동업을 끝낼 때가 된 것 같다."
도깨비는 허리춤에서 마지막 남은 금화를 꺼내 노인에게 건넸다.
"이건 너를 위한 마지막 복이다. 이것마저 태울 것인지, 아니면 네가 원하는 곳에 쓸 것인지, 그것은 네 선택에 달렸다."
노인은 금화를 손에 쥐었다. 그 안에는 따뜻한 기운이 깃들어 있었고, 그동안 봐왔던 금화들과는 달리 묘하게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깊이 생각한 뒤, 마을의 공동 우물 앞에 가서 조용히 금화를 던졌다. 금화는 물속으로 사라졌고, 그 순간 맑고 깨끗한 물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은 깜짝 놀라며 우물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건… 깨끗한 물이오! 우물이 다시 살아났소!"
도깨비는 빙긋 웃었다.
"네가 이번에는 제대로 복을 썼군."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알겠소. 복은 한 사람이 독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나누어야 진정한 의미가 있는 것이었소."
도깨비는 흡족한 듯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좋다. 이제 네가 진정한 복의 의미를 깨달았으니, 나도 떠나도록 하지."
그렇게 도깨비는 불길 속으로 스르르 사라졌다.
마을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복을 바라고 노인을 찾아오지 않았다. 대신 서로를 돕고, 함께 일하며, 진정한 행복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노인은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갔다. 비록 부자는 아니었지만, 그는 이제 마음이 한없이 가벼웠다.
그날 밤,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복이란, 처음부터 이곳에 있었던 것이었지."
7 복의 끝, 남겨진 진실
노인은 다시 조용한 삶으로 돌아갔다.
화려한 기와집을 떠나 예전처럼 작은 초가에서 지내며 손수 농사를 짓고, 남은 양식을 마을 사람들과 나누었다.
더 이상 복을 팔지도, 특별한 금화를 손에 쥐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는 전보다 훨씬 평온했다.
마을 사람들도 변해 있었다.
한때 복을 얻기 위해 서로 경쟁하고 욕심을 부렸던 사람들은 이제 함께 일하고, 가진 것을 나누며 살았다.
복이란 돈과 금화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 어귀에서 한 나그네가 노인을 찾아왔다.
"이 마을에 복을 팔던 노인이 있다던데, 혹시 그분을 아십니까?"
나그네의 목소리는 정중하면서도 어딘가 간절함이 묻어 있었다.
노인은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노인은 이제 더 이상 복을 팔지 않습니다."
나그네는 잠시 놀란 듯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하지만 저는 돈을 주고서라도 꼭 복을 사고 싶습니다. 제가 사는 곳에서는 가진 것이 아무리 많아도 불행한 사람이 많습니다. 부자들도 만족하지 못하고, 가난한 자들은 더 나은 삶을 꿈꾸지만 희망이 없습니다. 복이 있다면, 저희 마을 사람들도 행복해질 수 있지 않겠습니까?"
노인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대는 복이 무엇이라 생각하시오?"
나그네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답했다.
"부자가 되는 것, 병이 낫는 것, 원하는 것을 이루는 것 아닐까요?"
노인은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면 복을 받은 자들은 왜 다시 불행해졌겠소?"
나그네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노인은 조용히 마당의 우물로 걸어갔다. 깨끗한 물이 담긴 두레박을 길어 나그네에게 건네며 말했다.
"복이란 저 우물물과 같소. 그것을 퍼가고 나누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풍족하지만, 독차지하려 하면 금방 마르고 말지요. 복은 돈이나 금화로 얻는 것이 아니라, 서로 돕고 나누며 살아가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오."
나그네는 두레박을 받아들고 조용히 물을 들이켰다. 시원하고 맑은 물이 목을 적셨다. 그는 한참을 생각한 끝에 깊이 고개를 숙였다.
"말씀을 듣고 보니, 제가 찾던 복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그는 주머니에서 몇 닢의 은화를 꺼내려 했지만, 노인은 손을 내저었다.
"이제 나는 돈을 받지 않습니다. 대신, 당신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 사람들에게 이 말을 전해 주시오. 진정한 복은 손에 쥐는 것이 아니라, 함께 나누는 것이란 걸 말이오."
나그네는 다시 한 번 깊이 고개를 숙인 뒤 마을을 떠났다.
그날 밤, 노인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때였다. 불빛이 어른거리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놈, 결국 나 없이도 잘 살아가는군."
도깨비였다.
노인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제야 네가 말했던 복의 의미를 제대로 깨달았소."
도깨비는 나무에 걸터앉으며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그러면 이제 나도 슬슬 이곳을 떠나볼까 한다. 더 이상 네가 나를 필요로 할 것 같지는 않으니 말이다."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그동안 좋은 동업자였소. 떠나기 전에 한 가지 묻고 싶군."
도깨비는 흥미롭다는 듯 노인을 바라보았다.
"무엇을 알고 싶은 게냐?"
노인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처음에 나와 거래를 했을 때, 정말 내게 복을 주려 했던 것이오? 아니면 이미 내가 겪을 일을 알고 있었던 것이오?"
도깨비는 대답하지 않고 잠시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이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쩌면 둘 다일 수도 있고, 어쩌면 네가 스스로 만든 길일 수도 있지."
그 말만 남긴 채 도깨비는 바람처럼 사라졌다.
그 후로도 노인은 평범하게 살았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그를 여전히 '복을 알던 노인'이라 불렀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는 오랜 세월이 지나도 사람들 사이에서 전설처럼 전해졌다.
복을 쫓던 노인의 이야기.
도깨비와 함께한 기묘한 거래.
그리고 결국 그가 깨달은 진정한 복의 의미.
그 이야기는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사람들의 가슴속에 남아 있는 진실이 되었다.
엔딩 멘트
"복을 사고파는 것이 가능할까? 아니, 복은 그 자체로 흘러가는 법이지."
노인은 사라진 도깨비를 바라보며 쓸쓸히 중얼거렸다.
한때 손에 쥐었던 부와 권력도, 결국 욕망 앞에서는 덧없는 것이었다.
복을 판 대가는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이제 그는 깨닫는다.
진정한 복이란 거래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욕심 없이 살아가는 자에게 자연스레 깃드는 것이라는 사실을.